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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미정

48일 달 2016. 6. 5. 13:27

아무리 한숨을 쉬어도 답답한 게 응어리져서 내려가지 않을 때, 담배도 손쉽게 잡히지 않을 때.

오늘은 좀 그런 날이었다.
어제 낮부터 하루종일 쳐다 본 컴퓨터 화면에 질려 질펀히 자고 일어나니 눈은 몇 번을 꿈뻑꿈뻑 감았다 떠도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이불 밖을 벗어나고 싶어 허리는 꿈틀꿈틀 요동쳤으나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핸드폰을 보니 곧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일으켜지지도 않는 몸을 꾸덕하니 일으키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집안은 조용했고 내 눈밑의 다크서클처럼 퀭했다.

"..."

시계초침 돌아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계는 10시 42분 57초를 부근으로 멈춰 있었다. 나는 그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한창 예민하게 신경질이 나 있던 때, 아무 이유 없이 시계를 내려 두꺼운 건전지를 툭툭 방바닥으로 떨궈 내렸다. 뭐 하냐는 가족들의 말에 좀 시끄러워서, 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시계약을 거실 탁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나는 그 건전지를 다시는 찾지 않았으며, 그 건전지는 며칠 동안 탁자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보았을 때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방 안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시계는 제 기능을 잃었다.
다시는 찾지 않을거라 했던 건전지를 찾고 싶었다. 나는 시계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이젠 네가 그 시선을 외면하는 것 같았다.

주섬주섬 텔레비전을 켰다. 재밌는 예능은 없는지, 아니면 눈이 심심하지 않게 해 줄 재밌는 내용이라도 없는지. 심드렁하게 채널을 돌렸으나 발견되는 것은 없었다. 게임 채널에 대충 채널을 맞춰두고는 텔레비전에서 등을 돌렸다. 내 인생에 낙이 없다고 생각했다. 밥도 딱히 먹고 싶지 않았고, 담배도 딱히 땡기지 않았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댄다 하더라도 이 적적함을 깨뜨려 줄 것도 같지 않았다. 핸드폰에 손이 닿아 화면을 밝혔다. 연락처를 밑으로 내려도 그다지 연락할 사람도 없다. 이 아침에 이렇게 적적한데 뭐라 아침부터 연락해서 꾸물꾸물 내 걱정거리를 말하고 싶은 사람도, 기대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하긴 이 아침부터 이런 중2병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었다. 나도 그런 고민을 아침부터 받으면 얘가 미쳤나, 하고 장난스럽게 넘어갈 것이 분명한데 말이니.

시간은 여유로운지 촉박한지 일 초 일 초 흘러가고 있었다. 씻고 회사를 가면 되는데 오늘따라 기분은 너무 싱숭생숭했다. 회사도 가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넋을 놓은 듯, 오늘 내 기분은 그랬다. 아무것도 얻고 싶은 것도, 잃고 싶은 것도 없는 딱 그런 기분이었다. 텅 빈 기분을 느끼자 나는 급박하게 외로워졌다. 핸드폰을 열어 다시 화면을 밝혔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나를 위로해주고 기대라고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울컥울컥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핸드폰을 세게 눌러 껐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그런 일이었다.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외로워서, 기댈 사람이 없어서. 기댈 그 무언가가 없어서 그런가보다 어물쩍 넘기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어."

소파에 누워서 중얼거렸다. 집에 가고 싶었다. 몸은 집에 있었는데 왠 아이러니한 말이야,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었고 주워담을 수 있다 하더라도 주워담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출렁거릴 수 있는 곳에 닿고 싶었다. 몸은 집에 있지만 나는 아무것도 편하지 않았고 불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았다. 외롭고, 외롭고, 외롭다. 이외에 나의 심정을 표현할 단어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었고 그 이상 생각하기에는.

그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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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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