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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아마 생각할 수 없는 당신의 표정 아래에는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당신을 참 좋아했어요. 당신이 처음 말을 걸어주었던 그 순간부터, 어쩌면 그 때부터.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내가 끌려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순간 저는 마법에 걸린 듯 환상에 빠졌습니다. 에- 하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었던 건 진심이 아니였어요. 너무 놀라서, 너무 놀라서. 당신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저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적이여서 조금 낮은 목소리를 내어버렸어요.
그 짧은 순간이 날카로운 단도처럼 당신의 기억에 핏자국을 내 버린것만 같아 항상 죄책감에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겁났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올곧게 나만 봐 주었어요.
제가 쨍하게 파하하, 웃을 때에도. 곤란할 때 입꼬리를 파들파들 거릴 때에도 뭐든지 아는 것처럼 당신은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정직하게 바라봐 주었어요.
내가 가장 짓지 못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햇살처럼 보듬어주는 당신에게 나는 어쩐지 기대고 있었어요.
당신이 좋았어요.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언제까지나 제 것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언제나 단정하게 저를 맞이해 주었어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아슬아슬한 존재감을 피력하면서 없으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저는 당신이 없으면 숨을 쉬기 참 힘들었어요.
당신이 있어도 숨을 쉬기 참 힘들었지만.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호노카가 우리 둘 사이에 끼여 있다는 사실이 참 번거로웠어요. 그녀가 곁에 있음으로써 쿵쾅거리는 심장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었지만, 손이라도 한 번 부딪히며 걸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런 말미조차 사라져버리게 만들었어요.
원래 호노카의 시끌벅적함도 그다지 나쁘진 않았지만 좀 더 조용한 곳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좋잖아요? 우리 둘의 숨소리만 존재하는 공간이요.
당신이 척, 하고 제 손목을 잡아줄 때 부드러운 살결 안쪽으로 느껴지는 도드라진 뼈마디가 좋았어요. 부들부들한 피부 끝에 만져지는 굳건한 뼈의 느낌은 온몸에 전율이 돋아오를 것만 같았어요.
당신은 그 느낌을 항상 단점으로 꼽았어요. 저는 아니라고 도리도리했지만 수줍어하는 얼굴이 정말 예뻤어요. 그 붉어진 볼에 입술을 맞춰보고 싶었는데 참아요. 저도 모르게 꽉 쥐어버린 손에서 떨림을 느꼈어요. 사랑- 이라는 좋아함의 떨림이 아니라
내 것으로 가지지 못했다는 분함.
처음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저는 단지 제 머릿속에 있는 욕망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것 뿐이예요. 현실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바로바로 떠오르던 준비물들을 직접 한개씩 준비하려니 버겁기는 하지만요.
즐거워요.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제가 싫어요?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절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우미.
-
편지를 으스러트릴 수도 없고.
케이블 타이는 좀 단단했다. 대충 부드러운 옷으로 묶어놓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사이를 얄밉게 자리잡고 있는 케이블 타이는 내가 손이 자유로워 아무리 뜯어내고자 해도 뜯기지가 않았다. 하. 움직일 수가 없다.
눈과 손이라도 자유로워서 다행이었다. 어두움은 한참을 바라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겨우 눈에 익은 것들은 제 사진. 몰래 핸드폰으로 찍어놓은 제 옆모습들과 뒷모습. 같이 찍었던 사진들. 저절로 겁이 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어-때? 우미짱."
사람이 표정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까. 항상 생글생글 웃던 그녀와 갭이 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침묵이다. 침묵.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에서 보았던 그 공간이 이 공간일까 싶어 침묵을 깨뜨리고자 했다. 낯선 코토리로만 가득한 이 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나는 이런 그녀를 모른다. 생각하고 나니 떨렸던 몸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영혼 없이 붕 뜬 그녀의 눈동자를 본 순간 자꾸 날아가버리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내 머리로 손을 올린다. 움찔거렸다.
"가만."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에 지그시 씹던 입술도, 정신도 같이 놓아버렸다.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뜻한 공기가 퍼지고 있었지만 이가 덜덜 떨렸다. 심장만은 지지리도 혹독한 한겨울 속에 던져진 것 같았다. 그리고 입술을 차갑게 얼려놓는 그녀의 엄지.
"착하다"
도장을 찍듯 꾸욱, 하고 눌러버리는 차가움에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그리고 그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입술 끝에 닿는다. 그 장면에 눈을 감았다.
"도망치지도 마."
발목이 허전해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묶인 탓인지 어쩐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니, 인어공주가 막 사람의 다리를 만들어낸 양,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낯설었다. 차가운 두 손바닥의 기운이 다시 발목을 엄습했다.
"많이 아팠지- 우미짱.."
손도 많이 차갑지, 미안해...
방금까지 얼음장같던 말을 하던 공허한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말을 흐트리던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발목을 어루만진다. 워낙의 부드러운 천으로 묶였고, 내가 억울하게 저항하지도 않았지만 발목 부근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걸 보자 설핏, 눈물이 떨어졌다. 어쩌다 평화로운 일상에 이런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건지. 왜 이런 감정의 폭풍우에 너와 내가 도달하게 됐는지.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단지 코토리가 이제는 내가 아는 그 코토리다. 방울을 뚝뚝 만들어 침대로 얼룩을 만들어 내는 눈물은 기어이 왕왕 터트려냈다. 서늘한 표정에서 원래 알던 표정으로 돌아온 코토리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울면 코토리에게 걱정으로 돌아갈 텐데. 상황이 상황이였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울음을 그치려고 흐끅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 사진으로 둘러쌓인 방에서.
날 납치한 그녀에게서.
언제 햇볕을 볼 지, 언제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생각들을 하나도 읽지 못하는 상태로.
어쩐지 토닥토닥 어루만져주는 그녀의 어깨는 지금 당장 생각보다 너무 따뜻하고 피곤했기에 스르륵.. 눈이 감겨왔다. 그래. 우선은 코토리니까. 내일은 믿을 수 있을 것이다.
-
잘 잔다.
머리카락을 손에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 쥐었다가 놓았다. 앞머리를 한 번 쓸어올려 보았다.
매끄러운 이마에 입술을 가득 대었다.
긴 속눈썹도 성격만큼 가지런하다. 그 곳에도 입술을 한 번 대었다.
입술은-
조금만 아끼고.
새우처럼 자는데 제 시선을 피해 있는 우미가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자니까. 제가 몸을 직접 움직여 얼굴이 보이는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팔베게. 계속 해 주고 싶었던 거니까.
그리고 품에 안길 정도로 꼭 안고 토닥토닥해주기.
이렇게 사소한 걸 하기까지 저는 그녀를 납치하고 아프게 하고 울렸다.
힘들게 얻었다. 놓고 싶지도 않다. 겨우 찾은 자신의 것- 이니까.
너와 나에게 내일은 없다. 시작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끝은 그다지 밝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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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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