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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니코마키]약속

48일 달 2016. 6. 5. 13:41



"어.. 지금."
"떨어졌다고."

니코는 그랬다. 백번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음 기회는 또 있다고, 그 시험은 어려운 시험이라서 너도 한 번에 붙는 건 어렵다고. 그녀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에서는 백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나 있는 거 같았다. 그녀는 아무 이야기도 하기 싫은 듯 방 안으로 들어갔고 니코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만들던 나베 요리가 있었다. 그녀에게 먹여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서둘러 파를 썰었다.

"나와 봐."
"..."
"나와보라구"
"싫어."

겨우 들릴까말까한 목소리에 나는 방문 앞에서 떨어졌다. 열쇠가 어딨더라... 2분 뒤 거실의 악세사리 상자 안에서 발견한 절그럭거리는 열쇠를 가지고 방문 앞에 다시 섰다. 나는 무서웠다. 문이 열리고 그녀를 보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무슨 행동부터 보여야 할지 애매했다. 한가지 확신하는 건 나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철컥하는 낯선 이질감 끝에 문을 따고 본 그녀의 방은 낯선 어지러짐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울리는 핸드폰.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체념으로 가득차 있었다. 

"네.. 아버지."
"..."
"네. 내일 뵙겠습니다."

뚝, 찾아온 침묵과 함께 그녀는 벽 쪽을 향해 핸드폰을 세게 던졌다.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눈물로 젖어 있었고 불안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가라고. 그녀의 입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의대 시험에서 떨어졌다. 
마키는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절박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등 뒤에서 말없이 밀어주던 아이같은 그녀를 몇 번이고 안고 뒹굴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고 공부를 하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겠지만 저만큼 절박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합격만 하면 집안에서 그녀와 교제한다고 떳떳하게 밝히고 세상 모든사람 앞에서 자랑스러워지고 싶었다. 합격만 하면 제 잘난 콧대를 한번 높이 치켜들며 당당하게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싶었다. 나 합격했다고. 정면에서 그녀를 떳떳하게 바라보며 꼭 안아주고 싶었다. 합격만 하면, 그래. 그 말이 정말 빛이 바래졌다.

"떨어졌다고 들었다."
"..."

젓가락에서 미끌거리는 밥알은 다시 밥그릇 속으로 추락했다. 엄마는 제 눈치를 이것저것 살피고 있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할말은 없었다. 정적뿐인 자리에 그녀가 느낀 감정은 추락이였다. 옥상 끝에서 저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어지러움이 몰려오며 마키는 괜히 모를 희열을 느꼈다. 

"할 말은 없느냐."

아버지의 한 마디 말이 내려가는 영혼을 다시 붙잡아 끌어올렸다. 상상 속에서 그렸던 어지러움이 현실에 그대로 부딪혀왔다. 마키는 젓가락을 놓았다.

"없어요."
"..."
"이미 실패했잖아요. 떨어진 거. 시간을 되돌릴 수야 있겠어요?
시간을 되돌리려면 몇 번은 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스쿨 아이돌을 시작한다고 했을 뮤즈 때부터. 아니, 뮤즈 시작 전부터. 그럼 그때부터라도 공부했으면 뭐라도 됐겠죠. 
후회하냐고요? 지금 후회해요. 나는 실패했거든요. 아버지."

일어섰다. 아버지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안경 너머로 보고 있었다.

"바람 좀 쐬고 오너라."

마키는 그 말을 끝으로 핸드백을 챙겨 집을 나왔다. 까만 머리의 그녀가 집 앞에 있었다. 바람도 쌩하니 부는데 장갑 하나 끼고 오지 않았는지 빨간 맨살이 그대로 바람에 노출되어 있었다. 손을 후후 부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고 그녀는 저벅저벅 걸었다. 뚝뚝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걷는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몰라. 지금 나는 모르겠다.

-

"날씨 많이..춥죠? 잠깐 들어와서 몸 좀 녹이고 가요."

나쁜 것. 일부러 추워 보이라고 장갑도 빼놓고 기다리고 있었구만. 그녀를 뒤따라가려다가 높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발이 묶였다.

"전에도 한 번 뵈었죠?"

싱그럽게 웃는 모습이 그녀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언제 생각해도 그녀의 본가는 으리으리했다. 비싼 자기라던지 액자라던지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지만 니코는 이 곳에서 온기를 찾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바깥보다 추웠다면 추웠지, 결코 따뜻하지는 않았다.

"앉아요."
"..네."
"밥은 드셨어요?"
"네, 네네. 먹었습니다."

배고픈데. 밥 안먹었는데. 거짓말이지만 예의상 하는 거니 하늘도 봐 줄 것이다.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그녀가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아버님이 공백을 채웠다.

"자네도 걱정되서 찾아온 건가."

니코는 말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긴 해도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몰려오는 긴장감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이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여기 온 이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
"그럼, 쫓아가게."

스쳐 지나가듯 마주친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생기는 확고함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우선은 잡아야 한다. 어영부영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부츠를 거의 구기듯이 신고 바깥으로 나왔다.어디로, 어디로 갔지.

"봤어요?"

"여기 빨간 머리 여자, 못 봤어요?"

"머리 빨갛구요, 막 눈 살짝 올라가 있는 여자거든요."

한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어두운 밤거리에 내리는 눈은 상실감만 주었다. 그녀의 아슬아슬한 모습은 오늘 처음 보았다. 이런 상황 하나에 무참하게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그녀가 바보같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저 없이 비틀거리며 있을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어딨는지. 찾으면 볼을 양 손 가득 한 움큼 꼬집어주리라. 혹시나 집에서 죽은 건 아닐까, 왜 막 자살도 집에서 하지 않는가. 약을 남용한다던가, 목을 매단다던가. 불현듯 걱정이 몰려왔다. 우선 그럼 다시 집으로. 집으로 가야겠다.

"마, 마키짱!"

신발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허겁지겁 그 옆에 구겨진 부츠를 널부러뜨리고 그녀의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녀는 그대로 고이 자고 있었다. 약을 먹었다거나 그런 흔적은 없이, 얼굴에는 눈물 자국만 가득했다. 

바보같으니라구. 조금 안심하며 침대에 같이 누워 그녀를 꼭 안았다. 

울지 않기를. 또 이런 일에 슬퍼하지 않기를.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지만 무너지려 할 때마다 언제나 옆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아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싫다고 해도 옆에 있을거다. 약속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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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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