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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우미]인생은 말이지

48일 달 2016. 6. 5. 13:45

"인생은 말이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재떨이 대신 하얀 종이컵 위에 재를 놓는 그녀의 손가락이 하얗다. 

"재미없어."

그 얇은 담배도 하얗고 그녀의 입술 끝에서 나오는 한숨같은 담배연기도 하얗다. 오래간만에 본 에리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자신과 똑같이 풀어헤친 탄탄한 머릿결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미."
"네."

"안아주지 않을래, 나?"

얼굴이 빨개진 나는 더듬거리면서 강하게 부정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나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부정하고 부정했지만 그녀는 다가온다. 어깨 위 걸쳐진 하늘색의 가디건을 바닥으로 흘려 보낸다. 아이보리 색 나시티를 입은 그녀는 요염했다.

"그럴, 그럴 수, 수, 없어요..에, 에리."
"우-미는 이런 데 젬병이니까- 그래두."

가까이 다가오는 그 한 걸음걸음에 등 뒤에서 땀이 흘렀다. 안 돼요. 에리.

"뽀뽀하고싶지."

네. 그 입술에요.

"껴안고 싶지."

네. 그 품에요.

"안아주면 안돼?"

돼요. 된다구요. 어서 와요. 내 본능은 분명 미쳐버렸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쥐며 그녀를 밀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에리를 아끼고 싶어요.

"내가 짖궃지?"

방금까지 도도하게 눈을 뜨고 고양이같이 다가오던 그녀가 허탈하게 내 위에 주저앉았다. 에리의 등이 내 얼굴에 닿아 그 등에 파묻혔다. 그래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술을 잘못 놀려서 에리의 옷에 침을 묻히기 싫었다. 그녀는 다시 담배를 한 대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막아야지 싶어 뒤에서 손목을 잡아챘다. 그대로 에리의 허리를 감쌌다. 얇은 허리가 나의 양 팔에 묶였다. 의도치 않았다.

"으-샤"

에리의 허벅지에 손을 넣어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렸다. 흐에엑, 부끄러워. 놓아달라는 그녀의 말을 모른척했다. 그리고는 하얀 침대에 딱. 금발인 그녀의 머리와 흰 피부, 흰 시트. 너무 잘 어울려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시트 위에 흐드러진 금발이 아름다워- 나는 에리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아픔에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 위로 올라탔다.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 푸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살살 다뤄주지 않을 거예요."
"얼른 안아줘."

확실한 건 이렇게는 에리를 안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는 달랐다. 에리의 단조로운 속옷이 내 손에 들려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그녀의 입술에, 그녀의 가슴에, 그녀의 중요한 곳에 닿아 있었다. 눈을 살포시 감는다. 조용한 소음 속에서 달싹거리던 움직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던 입술의 부드러움, 코 끝으로 스며들었던 피부.

나는 에리의 위에 있었다. 에리의 부드러운 손이 제 검푸른 머리카락을 쥐어잡았다. 더욱 자신을 갈구하는 그 고통에 한쪽 입술을 말아서 꽉 깨물었다. 입술에서는 슬픈 맛이 났다. 나는 제 머리카락이 잡힌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올렸지만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다음을 기다리는 여유로움. 그 미소에 입술을 부딪혔다. 

"먹어버릴 겁니다, 에리."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옭아매는 척 한다. 매끄럽게 에리는 내 목 뒤로 팔을 걸치며 귀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잘 했어, 우미."

그 목소리가 에리에게도, 나에게도 이제는 아릿하다. 그녀의 신음과, 내 복잡한 마음이 얽혀 싸운다. 나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망설이는 발걸음은 다시금 에리와의 약속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우-미."
"..."
"가자."

항상 가던 그 곳 있잖아? 그녀가 손을 잡아끌고 앞장선다. 상큼한 금발이 기분좋았다.

"싫어?"
"...아뇨."

좋아요. 나는 웃었다. 웃는 그 얼굴은 내 가면이다. 나는 슬픈 얼굴로 에리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과 나는 대체 무슨 사이인지. 그냥 몸만 섞는건지. 나만 좋아하는건지.

나는 자신이 없어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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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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