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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니코생일글]반짝반짝

48일 달 2016. 7. 23. 10:39

그려지지 않는단 말이야!

볼펜을 내팽겨치는 작은 손은 단호했다. 투덜투덜거리며 노트를 덮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고됨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자야지 다음 날 스케줄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새벽 세 시를 지나가는 시계는 여느 새벽과는 달리 조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어날거야, 일어날거야. 중얼거리는 그녀가 기지개를 쭈욱- 하고 편다. 다시 펼쳐 본 노트, 거기에는 단조로운 선들이 모여 화려한 장식을 그려낸 낙서들이 있었다. 노트의 한 면을 꼬옥 채워가고 있는 여러가지 그림들은 까만 선 안에서 자유로이 흘러간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야자와 상은 아이돌이 된 계기가 뭐예요?
"반짝반짝 한 게 예뻤거든요. 갖고 싶었어요. 반짝반짝한 것."

작업하는데는 트윈테일이 좋다. 가르마를 잘 타서 머리를 양갈래로 가지런히 묶으면 없던 집중도 굉장히 잘 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잘 때에는 트윈테일이 불편하다. 리본을 풀렀다. 장난스러운 이미지에서 나이대가 훅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어려보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외모와 함께 거울 속에서 미묘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자리에 누웠다. 검은 머리가 물결처럼 베개 위에 흩어졌다. 누워서 본 하늘 위에는 형광별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어둑한 방에 쏟아질 듯 붙여놓은 형광별들은 그녀의 눈안에서 가득히 차올라 반짝거린다. 눈을 쉽게 감을 수 없었다. 반짝거리는 건 늘 예쁘고 아름답기에. 뒤척뒤척, 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역시 니코짱의 축전은 마무리해야 한다.





-


"야-자-와- 상!!!"
"니...니코니코-니☆"
"로 때울 생각 하지 마요 정말! 일찍 자기로 했잖아요!!"

까만 다크써클이 아래로, 아래로 짙게 내려간 눈을 보며 매니저가 혀를 찼다. 밤마다 매일 뭘 하는 건지, 하고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한 마디 말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실은 여기 오기 직전까지 얼마 남지 않는 내 생일에, SNS에 올릴 축전을 마무리짓고 있었단 말이다.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있지만 무엇을 그려야 할 지, 어떻게 완성해야 할 지, 또 실력은 바닥을 슬슬 기고 있어서 몇 번이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매일 밤을 새도 모자라단 말이다. 투덜투덜거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다. 



매니저는 격하게 핸들을 한 번 꺾었다. 쫄았잖아. 나. 연신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찍어 눌렀지만 어제 저녁에도 끝내지 못한 고민을 지금이라고 끝낼 리가 없다.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았다. 빨간 눈동자가 빛을 잃어버린 모습이 슬펐다. 니코 축전은 정말 예쁘게 그리고 싶은데.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 왔던 반짝거림, 그리고 그걸 이뤄온 나에게 주는 내 특별한 생일선물 말이다.

[니코, 생일날 뭐해?]
[축전 그릴거야]
[하-?]

부르르, 진동과 함께 온 마키의 문자에 재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아차, 같이 니코짱에게 입힐 옷을 같이 고민해 달라고 할까. 생일까지는 단 사흘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에게 문자를 치면서도 무엇을 입은 니코짱을 그려서 자신의 축전을 완성할 수 있을까. 시원시원한 마키의 답장이 건너왔다.

[덕질 같은 거 하지 말고 나와. 밥이나 먹게.]

밥이나 먹자니, 짜증을 내려다가 관뒀다. 오랜만에 보는 마키와 밥을 먹는 것도 좋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고. 그러면서 니코짱에게 입혀줄 옷을 고르는 것도 좋고. 마키는 똑똑하니 말이다. 나의 니코짱이 입고 싶은 옷 말이다. 음...화려한 전통 기모노를 한 번 그려볼까, 아님 반짝반짝 빛나는 요정같은 날개를 단 옷을 그려볼까. 짧은 문자 이후 헤실거리며 노트에 끄적끄적거렸다. 매니저가 가련하게 쳐다보는 건 뒤로 하고 말이다.

"..세상 덕질은 혼자 다하시네."
"그래도. 뭔가 반짝거리는 걸 입혀주고 싶었다고."
"자, 아."

우물우물.

그녀가 준 고기를 먹었다. 황홀하다. 지금 내 눈앞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도, 밥도. 오랜만에 집에서 라면말고 바깥 밥을 먹어본 지도 꽤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 그거말고 파인애플, 되려 포크를 쥐어주곤 그녀가 입을 벌린다. 내가 먹고 싶었던 파인애플을 콕 집었다. 그치만 이건 내가 먹고 싶었던 거니 내가 앙. 그녀가 눈을 흘겼다. 반짝반짝한 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녀가 눈을 빛낸다.

"난 누드화가 좋은데."
"싫어."

포크를 뺏어간 그녀가 마지막 남은 파인애플을 얄밉게 집어먹는다. 와인까지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이제는 개운한 얼굴이었다.

"드레스 어때?"
"드레스?"
"응."

아, 그런 드레스 입은 니코짱이라. 미니드레스로 할까. 엄청 축전 예쁘게 나올지도 모른다.

"그거 입고 나랑 결혼해주라."
"야! 니시키노!!"

진지함이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수확없이 헤어진 나는 어렴풋이 한 장면이 떠올라 그날부터 전화기도 꺼놓고 축전 그리기에 돌입했다.


-


-니코.
"그래"
-생일 축하해.

말이면 다야? 부루퉁한 내 말투에 그녀는 잠깐 눈치를 보듯 말을 아꼈다. 매년 생일 때에는 전날부터 집에 와서 같이 축전 그려주는 것도 보고, 집에서 같이 맛있는 것도 먹었는데 말이다. 그런 것들이 하나 없는 생일은 집순이인 나에게는 쓸쓸했다. 매년 챙겨주던 건 마키밖에 없었는데! 이런 전화가 성의없이 보여 나는 툴툴거렸다. 

-잠깐 나와봐.

왜라는 걸 굳이 꼭 붙여가며 툴툴거렸다. 집 바깥에는 있는 건가 하면서 가디건만 걸치고 황급히 나왔다. 휑 한 집 바깥. 그 모습에 실망한 내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치. 마키는 거짓말쟁이였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차의 라이트가 탁, 하고 켜졌다. 눈이 너무 부셔 눈을 가리자 차 안에서 그녀가 내렸다. 조금  분위기를 깨듯, 무언가 자기 몸집만한 큰 액자를 꺼낸다고 허둥지둥 거리면서 말이다.

"생일 축하해, 니코."
"아까도 들었거든?"

그래도. 이번에는 자기가 되려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민다. 그리고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액자를 벗겨낸다.

와.

와.

우와.

"야자와 니코의 오랜 팬이 주는 선물이야. 앞으로도 반짝반짝 내가 볼 수 있도록 있어주라."

첫 라이브 때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있었던 나는, 분홍색 미니 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프릴이 달린 리본으로 트윈테일을 하고, 머리는 약간 구불구불하게 손질해 있었다. 꽤나 신경을 쓴 처음 무대 그 장면이었다. 첫 라이브 무대 맨 앞자리에서 봐 주었던 그녀. 그리고 많은 팬들. 그 모습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쳐 반짝반짝거렸다. 내가 회상하는 추억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고마워.

눈물이 차오르려던 눈으로 생긋, 그녀에게 웃음을 지어 주었다. 꼭 안아오는 온기며 숨소리도 언제까지나 나를 지탱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지지해 주었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나의 팬이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반짝반짝 빛나야지.



-

"결국 그린 게 이거야?"
"엉."
"기특하네, 니코짱."

첫 라이브 때 내 의상을 입은 니코짱. 내가 나에게 주는 올해의 생일 축전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그렸는데, 마키와 생각이 겹친 건 여러모로 분하긴 하지만 그만큼 잘 통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는 마키의 손길을 가득 느꼈다. 



오늘이 내 생일이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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