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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 - 1

48일 달 2016. 10. 16. 18:29

마음을 찾아서






1. 누구에게나 추억은 소중하다









"스쿨아이돌-의 길을 열어준 뮤즈가 있었던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는데요. 러브라이브 10주년 기념 영상! 다같이 한 번 보도록 하죠!"

텔레비전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인지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트 보는데 집중이 여간 되질 않는다. 흰 가운을 입은 마키는 고운 얼굴에 주름을 몇 개 그려가면서 차트를 신경질적으로 넘겼다.

"start dash.."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에 그녀는 자연히 손을 멈췄다. 10년 전의 자신들의 모습이 화면에 그려졌다. 교복을 입은 앳된 자신들이 강당에서 노래부르던 영상, 그리고 러브라이브 결승 무대에서 눈물을 삼키며 가장 당당한 모습으로 불렀던 노래의 무대영상까지.

"꽤 오랜만이네."

마키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고 뮤즈와 상관없는 내용들이 흘러나왔지만 그녀의 추억은  10년 전의 그 곳에 있었다.

처음으로 호노카의 막무가내에 떠밀리듯 작곡했지만 그 때부터 뮤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멤버들과 연습했던 옥상, 동아리방. 1학년 때부터 쭉 써왔던 교실. 하굣길이라던지. 아니면 반짝반짝 빛났던 무대 위라던지. 학생때의 일을 오랜만에 생각하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키는 고등학교 3년을 참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뮤즈의 일도 있었지만, 또 원하던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린을 만난 것이였다. 비록 처음은 어떻게 이어졌는지 서로 볼을 부풀리는 관계였지만 말이다.

"그 노래, 뮤즈 노래죠?"

마키는 흥얼거리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같이 일하는 동기였다. 말은 아직 놓지 못해 서먹서먹해하는데. 마키만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빨개졌다.

"정말 유명했죠. 팬이였어요."

그녀는 싱긋 웃더니 마키의 옆에서 같이 보던 차트를 넘겼다. 마키에게 고등학생 때의 기억은 특별한 것이었다. 남들은 경험하지 못할 곳에 도달해 아홉사람만의 빛을 보았던 그 때.

"그 때는 수험생 때여서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저도... 덕분에 많은 용기를 받았어요."

빨개진 얼굴로 눈빛은 어딜 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차트에만 눈길을 향한 채로 말하자 그녀가 마키를 본다. 의외라는 눈빛, 그렇지만 그 눈빛은 곧 웃음기를 가득 머금었다.

"푸하, 하, 하하하하."

둘 다 동시이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에 지나가는 환자며 간호사며 둘의 웃음에 미묘한 물음표를 띄웠지만 누가 보던지 말던지 그들은 크게 웃었다. 그 때의 추억들이 고마웠다. 뮤즈가, 짧은 단발의 활발하지만 너무나도 여린 네가. 오랜만에 연락이나 할까- 하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








"호시조라 상. 이 글 제대로 검토하신 게 맞아요?"
"죄, 죄송합니다."

글자 하나 가지고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려다가 린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밉보이면 안된다.
다시 고쳐와요,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A4 용지들의 감촉이 서늘했다. 이걸 또 줍는 것도 일이다. 그냥 곱게 책상에 내팽겨쳐줘도 좋으니 그러면 좋을텐데. 바닥에 한 장씩 떨어진 종이들은 손톱이 짧으면 짧은대로 고생이고 길면 긴대로 고생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모르는 척 하며 줍는 그 쪽팔림까지 견뎌내야 한다.

아무도 린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이것만 하고 정리하세요. 아, 호시조라 상은 다 해 두고 가요."
"네."

아무런 내색없이 천연덕스럽게 웃는 것은 이제 사회인인 린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표정이 언제 한 번 달라졌다간 수군거리는 소문이 늘어나는 것은 사양이니 말이다.

"오늘 일 마치고 술 한잔 할래?"
"좋아, 역 근처에 인테리어 엄청 귀여운 곳 알아."
"호시조라 상, 우리 먼저 퇴근해요."
"..네."

먼저 퇴근할게요, 웃음소리와 함께 하이힐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다가 사라졌다.  드디어 시선들 속에서 자유로워졌다. 린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료를 정리했다. 어차피 할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일부러 느그적거리지 않았다면 그녀들보다 빨리 퇴근했을 수도 있었다.

"휴."

그건 아니다. 또 자신을 뭐라 생각할 지 모르니까 말이다. 자신은 어엿한 사회인이니 이런 생활들은 충분히 감내해야 한다. 프린트기의 버튼을 애꿎은 듯이 꾹꾹 눌렀다.
린에게는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힘들다아.."

린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호시조라 린' . 제 이름표를 제법 얄밉게 흘겨보았다. 자신의 이름표 옆에는 자그마한 액자가 하나 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지냈던 뮤즈 멤버들. 마지막 무대를 끝내고 서로 눈물범벅이다가 찍은 사진이었다. 웃는 얼굴 사이로 눈물자국들이 조금씩 비치는 것이 예뻤다. 그러고보니 린이 돌아보는 고등학생 때는 참 즐거웠다. 아무 생각없이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땀흘리며 노력하던 그 때. 혼자여서 외롭지 않았고 아홉이여서 서로 기댈 수 있었던 그 때 말이다. 뮤즈는 영원하지 않았지만 그 추억이 지금을 살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린은 액자에서 시선을 떼는 데까지는 메세지가 오는 알람음이 울리고 나서 조금 더 후였다.

[린, 오늘은 릴-화 타임이데이! 퇴근은?]

짧은 메세지 화면에 노조미의 흔적이 잔뜩 묻어져나온다. 나이스 타이밍.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노조미의 메세지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린은 가방에 이것저것 쑤셔넣고는 신발을 갈아신었다. 깨끗한 캔버스화가 그녀를 날아오르게 만들었다. 회사 문을 나서자 바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래서! 오늘 쵸- 짜증났단 말이지."

입에 라면을 우겨넣으면서 린이 잔뜩 화난 표정을 지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하라는 우미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간단히 탄산음료를 홀짝거렸다.

"린은 어른이 되었네요."
"응, 당연히 어른이지. 우미짱도 노조미짱도 어른이잖아."

우미는 린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먹지 않은 라면을 두고 린은 젓가락을 놓았다. 대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입맛이 좀 없네에."
"린, 괜찮습니까?"
"응? 뭐가?"
"힘들면 좀 기대도 된다는 말입니다. 린."
"지금 기대고 있는걸. 우미짱, 술 취했어!"

파하하, 웃는 린을 노조미와 우미가 걱정스레 쳐다보는 것도 모르는 채 린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다시 들기까지는 어찌나 힘에 겨운지. 내색 없이 고개를 들고 웃는 것이 힘들었다. 오늘의 기운을 회사에 다 써버려서 그런가보다. 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잘 가, 린! 언제든 연락해."
"웅! 다음에 또 봐!"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의 퇴근길은 멀고 외로웠다. 밤하늘의 별을 맑게 빛나고 있었다.

"술 마시고 싶어."

큰 마트를 지나면서도, 작은 편의점을 지나면서도 린은 혼잣말하기만 했을 뿐, 가게 앞에서 망설이거나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린에게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술을 사려고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그녀가 떠다닌다.

[린은 술 마시지 마.]

린은 잘 알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모였던 마키와 하나요, 그리고 린까지 이렇게 셋 모여서 자축 파티를 하던 때였다.

"으으 마키짱! 술은 참 좋은 것 같다냥!"
"붸에에. 하나요 좀 말려봐."

린쨩- 린쨩- 하나요가 린을 끌어당겼지만 린은 도저히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집에 가자, 린."
"싫다냐아아!! 조금만 더어~"

애교도 잔뜩 부렸지만 마키와 하나요는 단호해 보였다. 품에 가득찰 정도로 마키를 끌어안는 린은 고양이같았다. 그 품이 무진장 따뜻했던 기억에,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술취한 기억이 났다. 으 그건 린에게는 엄청난 흑역사지만.

"안.. 된다구. 린."

겨우겨우 린을 밀쳐내는 마키의 모습이 린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날 무릎이 하나는 까진 린이 마키의 잔소리를 잔뜩 들으며 해장을 했던 기억도 머릿속에서 굴러다닌다.

안 마신다구. 안 마셔. 기억 속에서 마키를 지우며 린은 볼을 부풀리며 걸었다.

뚝 뚝,
지금 자신의 뺨에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아니면 짭조름한 물인 건지 린은 구분할 수 없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은 자꾸 흘렀다.

"힘들어."

힘들다, 힘들다고, 누군가 알아줬으면 한다고!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은 연락조차 없다. 외로웠다. 린의 현재는 좋을 리 없었다. 연락이라도 해서 힘든 현실을 마구 늘어놓고 싶었지만 차마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 멤버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슬플 것 같았다. 예전부터 린은 이런 성격이었다. 내가 아래에 있어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웃는 걸 더 보고싶어. 보잘것없는- 린이니까.

휴대폰의 화면이 밝아졌지만 차마 그녀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게 망설여졌다.

"집에, 집에 갈거야."

린은 집 문 앞에 서서 버튼을 눌렀다. 집에 가고 싶었다. 바라던 집이다. 우선 생각없이 자고 싶었다.







======








마키는 가만히 있었다. 린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 싶었다. 힘들다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추억 속에서 붕 뜨던 마음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스마트폰을 끊고 내려놓았다. 린은 워낙에 활발했지만 또 그만큼 여린 아이였다. 보고싶었다. 당장에 달려가 안아줘야 할 아이였다.

"니시키노 선생님-"
"바빠요. 나중에 얘기해..."
"너무 급해서 그래요. 정말. 환자분께서..."

린에게로 쉬이 발걸음을 뗄 수 없다.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풀어버리고는 마키는 병동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긴다. 도저히, 도저히 갈 수 없다.















-----

약 10편 예상하는 중편의 글입니다

:-)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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