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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 - 2

48일 달 2016. 10. 19. 12:37

마음을 찾아서

 

 

 

 

 



2. 가혹한 건 아니고, 혹독해요.

 

 

 

 

 

 

 


오늘은 새삼스럽지만 린의 하루일과를 소개할게요. 우선 여섯시에는 기상을 해요. 알람은 럽윙벨이랍니다.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던 그 때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일어날 때 느끼고 싶어서요. 가끔 따라 부르면서 일어나기도 해요. 일어나면 상쾌한 하루를 위해 샤워도 하고 이제는 익숙해진 화장도 슥슥 그려요. 그리고 옷. 스커트와 청바지를 고민하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요. 그래도 이제는 여성스럽게 스커트도 자주 입어요. 오늘은 정장 치마가 어울릴 것 같으니 단정하게 한 번 입어볼까 해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보고는 매무새를 단정히 해요. 음, 괜찮네요. 린짱 이뻐! 혼자서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지만 꾸민 제 모습을 보면 행복해요. 기분은 좋아집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외치는 시간은 아마- 일곱시 반쯤 되려나요. 그러면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이예요. 여유롭습니다.

 
"이거 주세, 이것도 같이 주세요." 


도시락에 잡지도 같이 하나 집어듭니다. 이 잡지를 보는 이유는 <Duet> 이라고 하는 소설 때문이예요. 제가 다니는 출판사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출판사에서 연재하는 거라 주위사람들에게도 읽는다고 말을 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꼭 추천해주고 싶은 글이랍니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은 소꿉친구인 두 남녀가 같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가는 이야기예요. 남녀 연애사에는 그다지 흥미있어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뭔가 달라요. 가슴 끝이 아련하고, 무언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을 건드리는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예요. 게다가 남자애가 여자애를 엄-청! 끊임없이 좋아하는 그런 두근두근한 느낌 그대로 전해져 와요. 저는 이 글의 애독자예요.

 

 

 

 

 


"좋아해."

내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었다. 정말 좋아한다고. 좋아한다는 말에 담을 수 없는 그 큰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한다.
높게 음을 마무리짓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노래를 제대로 끝내야겠다는 의지가 흘렀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감정이 아니다. 나는 헤드셋을 벗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군은 뭘 원하는 거야. 최대한 맞춰 주고 있다니까?"
"알아. 근데 이건 아니야."
"그만해. 오늘은 좀 피곤해."

그녀는 헤드셋을 벗고는 가방을 챙겨들었다. 음악에서는 내 고집을 피우고 있지만 그 외에는 그녀가 먼저다.

"가면서 고기만두 먹자. 좋아해."
"응, 좋아..해."

'응, 나도 정말로 좋아하는걸.' 

 좋아해, 소리치고 있는데. 그녀는 못 듣는 게 분명하다. 못 보고 있다. 못 듣는 네가 야속했다.  ]

 

 

 

 

 


남자아이는 바보예요.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는 저 상황이 답답해요. 이 글을 보는 저도 답답하지만 남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아이도 참 바보예요. 이야기는 느리고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이런 느낌의 소설을 쓰는 작가가 궁금해요. 왠지 이런 잔잔한 짝사랑을 할 것 같은 사람 같아요. 오늘은 좋아하는 글도 읽었으니 더더욱 힘내야겠죠. 글에 집중하다보니 벌써 출근 시간이 가까워 오네요. 신나지 않지만 열심히 해야하는 출근입니다. 오늘의 나. 조금은 힘들지만 잘 할 수 있겠죠? 숨 크게 쉬면서 기합을 넣을게요.

 

 

 

 

스마일.

 

 

 

 

 

 

 

 

 

 


"오늘은 마치고 회식이 있어요."
"앗, 저 아직 담당 작가님한테 연재분을 못 받아서 갈 수 없어요.."
"호시조라 상. 다들 가는데 빼면 안 되지." 

하하, 그렇네요. 린은 겨우 웃었다. 급한 일도 아니였기에 더이상 고집을 부릴 수도 없다. 오늘은 집에서 철지난 잡지나 보고 집 청소나 하려고 그랬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렇다고 싫은 티를 낼 수도 없고. 시간이 느리게 가길 빌었지만 신은 그녀의 소원을 쉬이 들어주지 않았다.

 

 

 

 


"건배!"

머리가 조금 벗겨진 대리님을 시작으로 끄트머리에 앉은 린까지. 술은 마시기 싫어 눈치를 봐 가며 술잔에 물을 따라놓았다. 회식자리에서조차 린은 외로웠다. 그다지 끼일 말도 없어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리액션으로만 하하 웃으면서 대화에 묻어가고 있었다.

"호시조라 상, 요즘 일은 힘들어?"
"아, 아니예요. 대리님."

어느새 자리를 옮긴 머리가 까진 대리가 그녀 옆에 있었다. 오늘 왜 스커트를 입고 오려는 생각을 했는지 아침의 자신을 말리고 싶었다. 대리의 눈은 그녀의 허지를 향해 있었다. 허벅지를 반밖에 가리지 못한 린의 정장 스커트가 아슬아슬하다. 자리라도 옮기고 싶지만 눈치가 보였다. 술잔을 들이밀며 한 잔 마시라는 말에 물을 반 모금 삼켰다. 얼굴이 더욱 붉어진 대리가 린 가까이에 온다. 나쁜 냄새가 슬금슬금 풍겼다.

"호시조라 상, 진짜 예쁘네."

싫어요, 싫어요! 그 외침은 입안에서만 맴돈 채 밖으로 꺼내지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회식 공간에서 자신만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상사가 자신에게 보고서 뭉텅이를 바닥에 던질 때처럼, 누구도 린을 도와주지 않았다. 다들 외면했지만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만의 화젯거리를 떠들어대며 시선만 이쪽을 힐끗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놈의 손. 그 손은 징글징글하게 린으로 뻗어 왔다. 허벅지를 만지려는 손을 내색 없이 밀려고 했는데 오히려 손목이 잡혀버렸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구제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린은 나지막하게 불쾌한 신음을 흘렸다.
죽고 싶어.

 


치마 바깥으로 허벅지를 만지는 손길이, 그 감각이,
수치심과, 죄악감이 섞여서 당장이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시간, 초침이 흘러가는 순간이. 너무 길어서. 
 

 

 

 

 

 

 

 

 

 

♩♩

 

 


"어 리-"
"어, 어, 어, 엄마. 아, 지, 집, 집이라고?"
"리-"
"내, 내가 지금, 지금. 갈게."

전화를 다급히 끊으며 린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붉은 대머리가 그녀 아래에 있었다. 금방이라도 징그러운 손이 발목을 낚아챌 것 같아 린은 재빨리 구두를 신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둥, 그녀의 가방에서 무언가 떨어지는가 했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다시금 벨소리가 울렸다. 린의 친한 친구였다. 그만큼 이 일을 알려줄 수 없는- 친구.

"어디야, 린."
"아, 회식 빠져나오고 싶어서 그랬어. 응, 많이 놀랐지? 카요찡."
"내가 갈게. 어디야, 린쨩?"
"오늘 너무 피곤해서 나 자려고. 안녕. 카요찡."

전화를 끊고 배터리까지 빼 놓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린은 울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큰 마트에서, 작은 편의점에서 술을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며 걸었다. 집이 필요했다. 사람이 필요했다. 린은 그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집 현관문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왜 우는건지 모르겠다. 강제로 폭행당한 건 아니잖아. 그냥, 그냥 만져진 것 뿐인데 왜 이렇게 우는거야. 별 일 아닌 거라고 기억의 조작을 걸고 있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애쓴 노력조차 지워버리고 있었다.

 

 


"린."

중얼거리는 혼잣말은 옅은 한숨이 되어 날아간다. 어두운 집 앞, 하나요는 도저히  린의 집 문을 두들길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싶어서 집 앞까지 슬리퍼를 신은 발로 헐레벌떡 뛰어왔건만, 그녀는 린을 부를 수 없었다.

침묵에 사로잡힌 새벽이었기에, 그녀가 집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는 가슴에 아프게 스쳤다. 내색을 하지 않는 린의 성격을 아는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린- 울지마."

하나요가 다시 중얼거리자 조금 더 짙은 한숨이 되어 혼잣말이 날아간다. 울음소리가 그쳐갈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주말동안 린은 일어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물을 마시거나 탄산음료만 조금 마시고는 다시 거실 소파에 늘어지게 누웠다. 텔레비전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거들떠 볼 생각조차 없었다. 스마트폰을 다시 켰을 때에는 하나요에게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걱정된다고, 무슨 일 생긴 거 아니냐며 발을 동동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울지마. 마지막 문자에는 그 글자가 린의 마음을 징하게 울렸다. 제가 우는 건 또 어떻게 아는지. 그녀에게 이 이상의 걱정은 하게 만을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뚝뚝 흐르는 눈물은 닦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린은 겨우 메세지에 괜찮아 세 글자를 적고는 다시 휴대폰을 껐다. 

 

 

 

 

 

 

 

 

 

 

 


"안녕하세요."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채 린은 월요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보면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올라 눈을 몇 번이고 질끈 감았다가 뜨곤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나온 린의 책상에 놓여진.

"아..."

어쩐지.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며칠 전 출근길에 샀었던 잡지가 있었다. 까끌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휘, 둘러보았으나 린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어차피 잡지 하나 뿐이다. 취향 정도는 존중해주는 회사니까 철판을 깔고 일하면 될 것이다. 린은 가방안에 잡지를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할 일들이 꾸준하게 밀려왔다. 작가님께 글도 받아야 하고. 다음 기획 보고서도 작성해야 했다. 오늘은 작가님과 만나서 일러스트에 대해 중간 점검도 하기로 했으니 분명 외근이 있다. 린은 사무실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에서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린짱, 야근했어?"
"에, 아뇨. 작가님은 항상 얼굴이 좋아보이네요."
"맨날 작가님이래.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코토리라니까. 그보다도 린짱, 좀 쉬어야겠어." 

코토리는 일러 작가가 되어 있었다. 일적에서는 무조건 존댓말! 이라는 린의 원칙은 린만 지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코토리는 예뻤다. 매일 집에만 있으니 바깥에 나올 때만큼 공들여서 꾸미고 나온다고 했는데 꾸미지 않아도 예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이 좋은 긴 장발과 부드러운 눈빛이며 여성스러운 행동들이며 말이다. 그렇지만 일 이야기 할 때에는 존댓말이라니까 그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것만큼은 여성스럽지 않다. 코토리만의 고집이랄까.

"일러는 이렇게 그리려고 하는데...린짱?"
"아... 제가 글 작가님이랑 잘 얘기해 볼게요..."
"린짱. 그렇게 있으면 코토리 정말 슬프다고."

턱을 괴고 코토리는 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집중하는 눈빛은 무시할 수가 없다. 코토리는 답답한 검은 글자가 많은 종이를 서류봉투안에 되려 넣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린- 좀 쉬자."

아직 정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린은 서류봉투로 다시 손을 가져다댔으나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떼어내야만 했다.

"아파욧!!"
"무슨 일 있구나?"
"아뇨, 작가님.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화제를 전환하려고 했지만 쉬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코토리는 린의 두 손을 잡아오며 시선을 부딪혔다. 

"린-짱!"
"ㄴ,네?"
"봐요, 짠!"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빨간 장미꽃. 그녀가 린의 손에 장미꽃을 쥐어주었다.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는 손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마법에 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작스런 선물에 린의 얼굴이 발개진 것은 물론. 

"린짱은 웃는 게 더 예쁘네."
"...코토리."
"그치만 슬프면 울어도 돼. 힘내지 마."

린은 벙 쪄진 얼굴로 꽃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응, 코토리짱."

싱그러운 향기가 손끝에서 번졌다. 얼굴을 붉히며 린은 인사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냥 그 위로만으로도 고맙다. 담아놓으라며 조그마한 화병도 같이 챙겨주는 코토리의 마음 씀씀이는 섬세했다. 물론 코토리의 말대로 힘들어도 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꽃을 한참이나 바라보는 린의 눈빛은 물기를 한참이나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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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마음을 찾아서 2편,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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