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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 6화.
시계와 여주인공
한 시간은 60개의 분으로 나뉘어진다.
일 분은 60개의 초로 나뉘어진다.
이것은 일본에 있으나, 체코에 있으나 똑같았다. 하나요는 그 반복적인 시계를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었다. 숨을 가지런히 내쉬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공기같이 당연한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눈앞에서 보는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웅장함을 한껏 뽑내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그 시간의 급류에 휩쓸릴 것 같았다. 아니 지금. 하나요는 그 기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하나요는 크면 뭐가 되고싶어?"
"나...으응.."
"린이 알아! 하나요는 크면 아이돌이 될 거야!"
우와- 많은 아이들의 시선에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하나요 자신이 눈앞에 환상처럼 떠올랐다.
"하나요는 노래도 잘 부르고 아이돌 춤도 잘 추고. 린은 믿어. 하나요는 꼭 아이돌이 될 거야!"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그 미소가 좋았다. 따뜻했고, 손을 뻗어 잡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웅장한 시간의 기류는 급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웩, 하나요는 잠깐의 현기증을 느꼈다. 어지러운 기류 끝에는 석양,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뻗는 호노카가 있었다.
아...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의 혼란.
우유부단함과 나약함 사이에서 등을 떠밀어주던 그녀의 손. 하나요만이 할 수 있다고 꼭 말하며 밀어주던 그 손.
당시 린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때 보지 못했던 린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결단력 있는 미소가 애틋하게 두 눈동자에 잡혔다.
"린."
하나요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마자 시계는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요는 가만히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토증이 심해질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어질어질해진 바람에 하나요는 덜컥, 엉덩방아를 찧었고 딱딱한 체코의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하나요, 괜찮아?"
"아, 응. 린.. 린은?"
마키가 서둘러 그녀의 안부를 물어왔지만 하나요는 정신없이 린을 찾았다. 마키는 그녀를 감싸며 일어나게 만들었다. 살짝 떨어진 곳에서 린은 시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3시 30분.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는 린에게서 아슬아슬한 기운이 풍겨왔다. 하나요도, 마키도 더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오로라였다. 기어이 린은 훌쩍 훌쩍, 한 방울씩 눈물을 떨구어 내었다. 하나요와 마키는 그 모습을 씁쓸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중 아무도 린의 가까이에 갈 수 없었다. 린이 그동안 겪어왔던 힘든 일상들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슬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 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게 맞다고 둘 다 의견을 침묵적으로 통일했다.
"배고프다냐."
잔뜩 목소리가 가라앉은 린이 하나요와 마키에게 돌아온 것은 31분에 서 있던 분침이 시계를 두어 바퀴 돌았을 시간이었다. 린은 그 동안 쪼그려앉아서, 우러보며 서서, 또는 길바닥에 주저앉으며 시계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린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기에 마키나 하나요는 전혀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눈치만 챌 뿐.
"배고프다냐. 일본의 라멘 먹고싶다냐."
"벌써 고향병~?"
"그럼 안먹고싶기도 하고..."
무슨 말이 그래, 핀잔을 주는 마키는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린은 덤덤했다. 무언가 켕기는 것들이 있어 보였지만 마키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하나요가 린과 마키의 사이에 쏙 끼어들었다. 활짝 웃고 있었지만 무슨 의도인지, 무슨 생각인지 뻔히 보였다. 마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사이에. 린을 빼앗길 것 같다는 생각에 조바심내는 자신이 한심했다.
"돌아가면 라면부터 먹자 린."
"핫! 저기 저 엄청 큰 수제버거 먹고 싶다냐!"
"그런 린도 좋아. 린짱, 저거- 치즈 엄청 올라간 버거 어때?"
응, 린이 고개를 엄청나게 끄덕거린다. 웃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드니 계속 웃게 해 주고 싶었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고백하리라고 생각했다. 린을 향한 더이상 숨길 수 없는 하나요의 마음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으니 말이다. 나란히 앉은 린의 어깨를 빌려 머리에 기대었다. 린의 어깨는 나약했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지만 계속 기대고 있었다. 그 나약함이라도 붙잡고 싶은 게 하나요의 소원이었다.
"비행기, 오늘은 타야해."
아침을 먹는 중에 마키는 비행기표를 보여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 2주가 흘렀다. 체코에서 단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나머지 휴일을 즐겼다. 체코의 시계탑은 린에게는 하루도 빠짐없이 보게 되는 일상이 되어 버렸으며, 외국의 낯선 향기도 이제는 온 몸에 흠뻑 배여버렸다. 조금은 낯선 언어로 인사하며 웃음지을 수 있는 날들- 이 끝나는 것이다.
"가기 싫다냐..."
"여기서 평생 살수는 없는걸. 돌아가야지."
"알지만..."
짐을 챙기는 린의 손은 기운이 쭉 빠져있었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은 괴로울 것이었다. 2주동안 도피하며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았고, 노조미가 신신당부하듯 말한 시계탑 앞에서도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았지만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또 돌아가면 다시 보고서를 쓰고 퇴짜맞고, 사람들에게 남모를 수군거림을 받는 일상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퇴사는, 그 당시에는 생각없이 내 놓았던 것이었다. 코토리가 중간에서 막아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또 아니다. 그래. 애매모호하다. 2주면 충분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충분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 돌아올 때까지 린은 울적한 그 상태였다.
"자. 2주동안 다들 고생했어."
공항에서 하나요는 린을 응시했지만 린은 그 시선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린이 하나요를 쳐다봤을 때에는 로밍이 풀린 하나요의 휴대폰에서 요란하게 벨소리가 울리던 때였다.
"하나 상!!!! 이번에 올릴 화를 아예 잃어버렸어요!! 오늘이 당장 마감인데에에에에에!!!"
마키와 린에게도 충분히 들릴만큼 큰 소리가 휴대폰 저 너머에서 들렸다. 그녀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조용한 목소리로 뭐라 하고는 끊는 하나요에게 린은 호기심스런 눈빛이었다. 일에 대해서는 워낙 별 말도 안하던 하나요였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마키도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나 요즘.. 작은 출판사에서 글 쓰고 있으니까 말야. 하하하. 먼저, 가도 돼? 바쁜 거 같아서."
"바로 일본와서 일이라니.."
"미안, 린짱. 내가 먼저 연락할게. 같이 라멘 먹으러 가자."
캐리어를 끌고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는 하나요를 뒤로하고 린은 곧장 공항의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하니 그것.
"다행히 저번 발간호가 남아있었어. 좋아."
"이거 뭐야?"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의 소설."
린이 꺼내든 것든 <duet>이라고 적힌 소설이었다. 이런 연애소설에 관심이 있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따뜻힌 느낌의 약간 부끄러운 일러도 함께. 붸에에. 마키는 난색을 표했지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린은 열심히 정독중이었다. 달달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소설을 읽던 그녀가 잡지를 덮고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여주인공이, 깨닫기 시작했다니. 하- 정말 조마조마하다구. 이제는 언제 고백받아도 모른다구!"
여운이 그렇게까지 남는건가, 린이 상기될 정도로 좋아하는 소설의 일러를 보았다. 헤드셋을 들고 있는 남자와 노래를 부르는 여자. 애틋해지는 그림체가 좋았다. 린이 좋아하는 글이라면 분명 마키도 좋아할 것이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헉, 헉. 담당자님? 파, 파일 가지고 왔어요!"
"앗!! 하나 상!!! 엄청 기다렸다고요."
"잊어버리시면 어떡해요..그래도 있어서 다행이죠."
울먹거리는 담당자를 뒤로 하고 이번화 파일을 불러왔다. 퇴고분도 바로 준다며 차 한잔을 주고는 담당자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할 일이 없어졌다. 미니 노트북을 열어 다음화를 서걱서걱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슬슬 여자 주인공이 제 마음을 알아챈다. 남자 주인공은 고백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고. 여자 주인공이 마음을 알아챈다면 절정, 결말은 재미있는 구조가 된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게 굴었던 여주였던가.
하나요는 써내려가던 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여주를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모르는 멍청한 여주.
이 여주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하나요조차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제 품 바깥에서 울기만 하고, 토닥거려줘야지만 비로소 웃는 린이 이 소설의 모델이니까 말이다.
휴대폰을 들어 린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미국에서 놀면서 같이 찍은 사진. 린의 웃는 모습이 꽤나 잘 나왔다. 그 화면에 살포시 입술을 대었다. 꼭, 같이 있고 싶었다.
"하나 상. 오래 기다렸죠? 이거 퇴고만 해주시면 거의 끝인데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아.. 제가 오늘 너무 피곤한데.."
"그래도 도와주셨잖아요. 아 맞아, 항상 일러를 부탁드리는 작가님도 같이 올텐데 그래도 인사차 먹고가요. 저도 이렇게 보내기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담당자의 성화에 의해 하나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퇴고한 글은 원래 썼던 것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일은 잘한다. 넉살도 좋고 일도 잘 처리하지만 눈치가 없는 건 정말 피곤하지만 말이다.
"가요, 추워서 나베 먹기로 했어요. 그 나베가 어떤 나베냐면 소고기를 구워먹는건데~ 그 육즙이 나베로 떨어져서 나베 맛이 엄-청 꿀맛이라고요. 그러면 술도 얼마나 잘 들어가는지. 크-"
묻지도 않았는데 가게 안에서 주절주절 말하는 담당자는 세상 걱정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 넉살좋은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을 때에는 가게문이 열리던 때였다.
"코토리!!! 여기야!"
코토리? 제가 알던 그녀가 맞는지 고개를 돌렸다. 회색 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맑고 따뜻한 느낌의 눈동자- 가 웃는다. 그리고 하나요에게 향하는 시선.
"아, 여기가 그 듀엣 작가님?"
"저...ㅋ.."
"안녕하세요. 미나미 코토리입니다. 초면이네요. 글이 정말 좋아서 일러를 그리고 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웃는 코토리의 모습에서 찡긋하는 윙크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듀엣을 쓰고 있는 하나입니다. 담당자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야 늘 감사합니다."
하나요도 찡긋, 윙크를 했다. 그제야 하나요에게서 긴장감이 확 풀렸다. 생각보다 인연은 가까이에 있었다.
====
근 한달만에 찾아왔습니다:-)
8~9화 쯤에는 완결을 짓고싶어 분발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계와 여주인공
한 시간은 60개의 분으로 나뉘어진다.
일 분은 60개의 초로 나뉘어진다.
이것은 일본에 있으나, 체코에 있으나 똑같았다. 하나요는 그 반복적인 시계를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었다. 숨을 가지런히 내쉬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공기같이 당연한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눈앞에서 보는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웅장함을 한껏 뽑내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그 시간의 급류에 휩쓸릴 것 같았다. 아니 지금. 하나요는 그 기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하나요는 크면 뭐가 되고싶어?"
"나...으응.."
"린이 알아! 하나요는 크면 아이돌이 될 거야!"
우와- 많은 아이들의 시선에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하나요 자신이 눈앞에 환상처럼 떠올랐다.
"하나요는 노래도 잘 부르고 아이돌 춤도 잘 추고. 린은 믿어. 하나요는 꼭 아이돌이 될 거야!"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그 미소가 좋았다. 따뜻했고, 손을 뻗어 잡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웅장한 시간의 기류는 급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웩, 하나요는 잠깐의 현기증을 느꼈다. 어지러운 기류 끝에는 석양,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뻗는 호노카가 있었다.
아...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의 혼란.
우유부단함과 나약함 사이에서 등을 떠밀어주던 그녀의 손. 하나요만이 할 수 있다고 꼭 말하며 밀어주던 그 손.
당시 린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때 보지 못했던 린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결단력 있는 미소가 애틋하게 두 눈동자에 잡혔다.
"린."
하나요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마자 시계는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요는 가만히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토증이 심해질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어질어질해진 바람에 하나요는 덜컥, 엉덩방아를 찧었고 딱딱한 체코의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하나요, 괜찮아?"
"아, 응. 린.. 린은?"
마키가 서둘러 그녀의 안부를 물어왔지만 하나요는 정신없이 린을 찾았다. 마키는 그녀를 감싸며 일어나게 만들었다. 살짝 떨어진 곳에서 린은 시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3시 30분.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는 린에게서 아슬아슬한 기운이 풍겨왔다. 하나요도, 마키도 더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오로라였다. 기어이 린은 훌쩍 훌쩍, 한 방울씩 눈물을 떨구어 내었다. 하나요와 마키는 그 모습을 씁쓸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중 아무도 린의 가까이에 갈 수 없었다. 린이 그동안 겪어왔던 힘든 일상들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슬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 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게 맞다고 둘 다 의견을 침묵적으로 통일했다.
"배고프다냐."
잔뜩 목소리가 가라앉은 린이 하나요와 마키에게 돌아온 것은 31분에 서 있던 분침이 시계를 두어 바퀴 돌았을 시간이었다. 린은 그 동안 쪼그려앉아서, 우러보며 서서, 또는 길바닥에 주저앉으며 시계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린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기에 마키나 하나요는 전혀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눈치만 챌 뿐.
"배고프다냐. 일본의 라멘 먹고싶다냐."
"벌써 고향병~?"
"그럼 안먹고싶기도 하고..."
무슨 말이 그래, 핀잔을 주는 마키는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린은 덤덤했다. 무언가 켕기는 것들이 있어 보였지만 마키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하나요가 린과 마키의 사이에 쏙 끼어들었다. 활짝 웃고 있었지만 무슨 의도인지, 무슨 생각인지 뻔히 보였다. 마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사이에. 린을 빼앗길 것 같다는 생각에 조바심내는 자신이 한심했다.
"돌아가면 라면부터 먹자 린."
"핫! 저기 저 엄청 큰 수제버거 먹고 싶다냐!"
"그런 린도 좋아. 린짱, 저거- 치즈 엄청 올라간 버거 어때?"
응, 린이 고개를 엄청나게 끄덕거린다. 웃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드니 계속 웃게 해 주고 싶었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고백하리라고 생각했다. 린을 향한 더이상 숨길 수 없는 하나요의 마음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으니 말이다. 나란히 앉은 린의 어깨를 빌려 머리에 기대었다. 린의 어깨는 나약했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지만 계속 기대고 있었다. 그 나약함이라도 붙잡고 싶은 게 하나요의 소원이었다.
"비행기, 오늘은 타야해."
아침을 먹는 중에 마키는 비행기표를 보여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 2주가 흘렀다. 체코에서 단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나머지 휴일을 즐겼다. 체코의 시계탑은 린에게는 하루도 빠짐없이 보게 되는 일상이 되어 버렸으며, 외국의 낯선 향기도 이제는 온 몸에 흠뻑 배여버렸다. 조금은 낯선 언어로 인사하며 웃음지을 수 있는 날들- 이 끝나는 것이다.
"가기 싫다냐..."
"여기서 평생 살수는 없는걸. 돌아가야지."
"알지만..."
짐을 챙기는 린의 손은 기운이 쭉 빠져있었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은 괴로울 것이었다. 2주동안 도피하며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았고, 노조미가 신신당부하듯 말한 시계탑 앞에서도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았지만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또 돌아가면 다시 보고서를 쓰고 퇴짜맞고, 사람들에게 남모를 수군거림을 받는 일상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퇴사는, 그 당시에는 생각없이 내 놓았던 것이었다. 코토리가 중간에서 막아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또 아니다. 그래. 애매모호하다. 2주면 충분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충분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 돌아올 때까지 린은 울적한 그 상태였다.
"자. 2주동안 다들 고생했어."
공항에서 하나요는 린을 응시했지만 린은 그 시선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린이 하나요를 쳐다봤을 때에는 로밍이 풀린 하나요의 휴대폰에서 요란하게 벨소리가 울리던 때였다.
"하나 상!!!! 이번에 올릴 화를 아예 잃어버렸어요!! 오늘이 당장 마감인데에에에에에!!!"
마키와 린에게도 충분히 들릴만큼 큰 소리가 휴대폰 저 너머에서 들렸다. 그녀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조용한 목소리로 뭐라 하고는 끊는 하나요에게 린은 호기심스런 눈빛이었다. 일에 대해서는 워낙 별 말도 안하던 하나요였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마키도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나 요즘.. 작은 출판사에서 글 쓰고 있으니까 말야. 하하하. 먼저, 가도 돼? 바쁜 거 같아서."
"바로 일본와서 일이라니.."
"미안, 린짱. 내가 먼저 연락할게. 같이 라멘 먹으러 가자."
캐리어를 끌고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는 하나요를 뒤로하고 린은 곧장 공항의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하니 그것.
"다행히 저번 발간호가 남아있었어. 좋아."
"이거 뭐야?"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의 소설."
린이 꺼내든 것든 <duet>이라고 적힌 소설이었다. 이런 연애소설에 관심이 있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따뜻힌 느낌의 약간 부끄러운 일러도 함께. 붸에에. 마키는 난색을 표했지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린은 열심히 정독중이었다. 달달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소설을 읽던 그녀가 잡지를 덮고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여주인공이, 깨닫기 시작했다니. 하- 정말 조마조마하다구. 이제는 언제 고백받아도 모른다구!"
여운이 그렇게까지 남는건가, 린이 상기될 정도로 좋아하는 소설의 일러를 보았다. 헤드셋을 들고 있는 남자와 노래를 부르는 여자. 애틋해지는 그림체가 좋았다. 린이 좋아하는 글이라면 분명 마키도 좋아할 것이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헉, 헉. 담당자님? 파, 파일 가지고 왔어요!"
"앗!! 하나 상!!! 엄청 기다렸다고요."
"잊어버리시면 어떡해요..그래도 있어서 다행이죠."
울먹거리는 담당자를 뒤로 하고 이번화 파일을 불러왔다. 퇴고분도 바로 준다며 차 한잔을 주고는 담당자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할 일이 없어졌다. 미니 노트북을 열어 다음화를 서걱서걱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슬슬 여자 주인공이 제 마음을 알아챈다. 남자 주인공은 고백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고. 여자 주인공이 마음을 알아챈다면 절정, 결말은 재미있는 구조가 된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게 굴었던 여주였던가.
하나요는 써내려가던 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여주를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모르는 멍청한 여주.
이 여주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하나요조차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제 품 바깥에서 울기만 하고, 토닥거려줘야지만 비로소 웃는 린이 이 소설의 모델이니까 말이다.
휴대폰을 들어 린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미국에서 놀면서 같이 찍은 사진. 린의 웃는 모습이 꽤나 잘 나왔다. 그 화면에 살포시 입술을 대었다. 꼭, 같이 있고 싶었다.
"하나 상. 오래 기다렸죠? 이거 퇴고만 해주시면 거의 끝인데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아.. 제가 오늘 너무 피곤한데.."
"그래도 도와주셨잖아요. 아 맞아, 항상 일러를 부탁드리는 작가님도 같이 올텐데 그래도 인사차 먹고가요. 저도 이렇게 보내기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담당자의 성화에 의해 하나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퇴고한 글은 원래 썼던 것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일은 잘한다. 넉살도 좋고 일도 잘 처리하지만 눈치가 없는 건 정말 피곤하지만 말이다.
"가요, 추워서 나베 먹기로 했어요. 그 나베가 어떤 나베냐면 소고기를 구워먹는건데~ 그 육즙이 나베로 떨어져서 나베 맛이 엄-청 꿀맛이라고요. 그러면 술도 얼마나 잘 들어가는지. 크-"
묻지도 않았는데 가게 안에서 주절주절 말하는 담당자는 세상 걱정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 넉살좋은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을 때에는 가게문이 열리던 때였다.
"코토리!!! 여기야!"
코토리? 제가 알던 그녀가 맞는지 고개를 돌렸다. 회색 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맑고 따뜻한 느낌의 눈동자- 가 웃는다. 그리고 하나요에게 향하는 시선.
"아, 여기가 그 듀엣 작가님?"
"저...ㅋ.."
"안녕하세요. 미나미 코토리입니다. 초면이네요. 글이 정말 좋아서 일러를 그리고 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웃는 코토리의 모습에서 찡긋하는 윙크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듀엣을 쓰고 있는 하나입니다. 담당자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야 늘 감사합니다."
하나요도 찡긋, 윙크를 했다. 그제야 하나요에게서 긴장감이 확 풀렸다. 생각보다 인연은 가까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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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달만에 찾아왔습니다:-)
8~9화 쯤에는 완결을 짓고싶어 분발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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