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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서 - 7

48일 달 2016. 12. 11. 11:30






마음을 찾아서 - 7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으으...술...그만 줘 코토리이..."
"에에 안마시면 다음 화 일러 안 그려줘~ 여기 작가님이 본다고?"
"아 진짜 치사하잖아. 마신다고요오~ 하나 상, 봤죠! 크...짱 마시...썽..."


기어이 테이블에 엎어진 담당자를 두고 코토리는 하나요와 눈을 마주해왔다. 이번엔 내 차례라는 듯.


"어디서 뭐하나 했더니 가까이에 있었잖아? 카요짱."
"아..어..음..코토리짱.."



코토리는 고등학생 이후 더 예뻐져 있었다. 옅게 화장한 데다가 그녀와 어울리는 여리여리한 꽃 냄새가 나는 향수. 따뜻한 느낌의 아이보리 색깔의 스웨터와 숄 머플러, 꽃무늬가 자잘한 네이비색 스커트는 그녀와 어울렸다. 이런 구구절절한 얘기는 필요없을지도- 그저 코토리는 예뻤다. 하나요는 코토리가 따라주는 술을 한 잔 받아서 반쯤 마셨다. 잔 사이로 그녀의 예쁜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줄도 알고 카요짱은 대단하네."
"으응..고마워. 코토리짱."


코토리는 턱을 괴었다. 조금 더 눈을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자세.


"린과는 잘 되어가고 있니?"




그 질문 하나에 공기의 흐름이 우뚝. 하고 멈춰선 것만 같았다. 하나요는 등 뒤로 식은땀이 쭈우욱 하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마키 이외에는 비밀로 했던 제 감정이 이렇게 한순간에 드러난다. 숨기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안다는 눈빛의 코토리를 이길 수 없었다. 


"어..떻게."
"여주- 그리고 카요짱. 여주가 꼭 린을 닮아서 말이야."


하나요는 잔에 남아있던 나머지 것들도 마셨다.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궁금하기도 했어. 왜- 남녀 사이의 일을 담았는지. 이건 린과 하나요의 이야기인데? 싶어서 말이야."



빙글빙글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코토리의 직감은 과연 놀라울 만했다. 그렇게까지 알아버린 이상 자신이 숨길 것은 없었다.




"곧, 고백하려고 그래."


코토리는 그 뒤로 말이 없없다. 보글보글 끓는 나베 소리, 가끔씩 괴로운 소리를 내뱉는 담당자, 조금은 풀린 눈으로 있는 하나요까지.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힘 내. 하나요짱."





들릴 듯 말듯 코토리의 입술이 달싹거리더니 급하게 가방을 챙겼다. 일어나! 담당자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가게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다 보고 있으면서도 하나요는 정신이 멍해져 있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제는 불이 꺼져 식은 나베뿐이었다.









-





"린짱, 출근하자."


달콤한 토스트의 냄새가 침대 가까이에서 난다. 린이 눈을 비비적거리며 겨우 일어난 시간은 아침 여섯 시를 조금 넘겼다. 마키는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었고 연신 파운데이션을 찍어바르고 있었다.


"아....으응?"
"오늘부터 출근해야지. 차, 태워줄게."
"응..."


아무리 코토리가 사직은 없던 일로 하자! 라고 했지만 린의 기분이 영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출근은 해야 한다. 밍그적밍그적 거리고 있자니 마키의 눈빛이 심상찮다. 2주나 쉬었는데 회사 사람들에게 돌릴 과자 세트도 챙기니 마키가 얼른 짐을 챙겨받는다.


"린."
"...나, 회사 가도 될까?"
"가자. 뻔뻔하게. 린은 잘못한 거 없잖아."


린이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은 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선 죽도록 소심한 막내라는 것, 최근 일어난 이러저러한 일들을 말하자니 걱정받고 싶지 않았다. 체코에 있을 때에 보인 눈물 때문에 마키는 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둔감해도 그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마키에게 민폐도 끼치고 싶지 않았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 다녀와.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레스토랑? 고기 썰어?"
"라-멘!"
"그래, 라-멘."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린을 보는 마키가 웃는다. 차의 창문너머로 보이던 마키의 얼굴이 조금씩 사라진다. 부우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차를 보며 린은 체코에서 했던 마키의 말을 떠올렸다.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시계도, 그녀의 인생도.



린이 흘끗 본 시계는 아직 여덟시 삼십 분이였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는 공허했다. 깊은 숨을 몇 번이고 들이쉬었다가 내쉬었지만 이 적막함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였다. 들고온 과자를 잘 보이는 곳에 내려놓고는 가득 쌓인 서류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맨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2주 전에 린에게 주어졌던 기획서와 피피티 자료였다. 빨간 펜으로 날카롭게 그어진 지적들은 아침부터 활발하게 지내자 마음먹었던 기분에 빨간색으로 먹칠을 하고 있었다.



[기획서 수정하고 오늘 미나미 상 미팅 있어요. 공백기간동안 일 쌓인거부터 정리하세요.]




아무도 린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일조차도 메세지로 딱. 정리할 건 생각보다 많았지만 코토리를 만나는 것은 그래도 숨통이 트이는 그것이었다. 코토리의 배려에 감동하면서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획서부터 먼저 정리해야 한다. 아예 처음부터 작성하는 게 더 낫겠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오, 미나미 상. 왔어?"
"네. 안녕하세요. 어머, 린짱. 출근하는 줄 모르고 왔네."
"아.. 네. 안녕하세요.. 미나미.. 상."



코토리는 웃으며 린의 자리 가까이에 왔다. 린의 손을 잡고는 일어난다.


"그럼, 난 린짱이랑 미팅. 다들 수고해요."


거의 끌려나오다시피 한 린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있자 코토리가 자지러질 듯 웃는다. 속 시원하지 않냐며. 웃는 코토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기획서고 뭐고 다 수정해 놓았다는 말에 한시름 안심도 했고. 데이트나 하자며 근처 바로 끌고 갔다. 여기는 잘 아는 데라며. 24시간 영업하는 좋은 곳이라고 실없이 웃으면서 말이다.




"술, 마실래?"
"낮부터?"
"에- 어두우니까 밤인데."



이건 또 무슨 논리람.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은 굉장히 달달한 것이였다. 카시스 오렌지라고 짤막하게 설명한 바텐더는 곧 자리를 떴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코토리의 표정이 보였다. 카시스 오렌지는 달달해서 계속 마시고 싶었고, 마시면 마실수록 궁금한 코토리의 표정에서 물음표를 없애 주고 싶었다.



"어디 다녀왔어~?"
"으응.. 마키짱이랑 카요짱이랑 체코."



재밌었어? 뭐 봤어? 여행 얘기로 대충 이야기를 끌어내던 코토리는 여전히 궁금증 투성이였다. 뭘, 더 물으려고 하는 건지.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좋아하는 사람?"
"응."


주변에 남자가- 없는데. 회사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를 꼽다가 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코토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굳이 남자여야만 해?"


코토리의 말은 이해가 어려웠다. 남자여야 하냐는 말이 너무 의외여서.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의도를 알지 못했다.


"하나요짱이라던지. 마키짱이라던지- 아니면 나?"
"코토리짱?"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말하는 코토리는 무언가 할 말이 짙게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별 말이 없었다. 카시스 오렌지를 한 잔 더 마시고 싶다, 생각할 때 다시금 바텐더가 찾아왔다. 달달한 데다가 정신을 쏙 빼놓는 칵테일이 좋았다. 자꾸 마시고 싶었다. 그 달달함에 빠진다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체코의 시계와. 방금 코토리가 말한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던가. 전부 다 기분좋게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하나요. 글 쓰고 있다는 거 알아?"
"아- 응. 우연찮게 들었어."
"나도 며칠 전에 봤는데. 의외였어. B 출판사 알고 있어?"



B 출판사라. 기억을 곰곰히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출판사와 적대 관계에 있다고 했던 그 출판사-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듀엣."
"...응?"
"잘 나가는 작가라고 알고있는데. 린은 그 작품 알아?"



린은 가방 안에 있는 화려한 표지의 잡지를 꺼내들었다. 며칠 전 공항에서 샀던 그 잡지. 하나 상- 하나요. 듀엣.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좋아하는데. 들어줘.]




좋아하는 마음.




린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카요짱에게."
"태워줄게. 술 안마셨으니까."


차키를 들고 빙글빙글 돌리는 코토리의 표정은 미묘함이 머물렀다. 차를 끌고 이동하느 내내 코토리는 말이 없었다. 술을 마실 때 보였던 물음표들은 코토리에게 더이상 없었지만 대신 말못할 미묘함이 머물렀다. 무엇 때문인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보이는 그대로 코토리의 마음도 미묘했다. 하나요에게 데려다 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하나요에게 데려다 주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차를 몰고 있는 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린. 오늘은 그냥 집에 가."
"왜. 하나요에게- 물어볼 게 있어."
"듀엣의 작가인 걸 왜 숨겼는지 물을거야?"
"아..니. 아니..."
 

린은 명확하게 대답하기도 그랬다. 그 여자주인공이 나인지 묻기도 그랬다. 다짜고자 나 좋아하냐고 묻기도 그랬다. 여린 그녀의 마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상처를 줄 수도 없고.


"집으로... 데려다 주라."
"... 그럴게."


집으로 가는 길도 씁쓸했다.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지.


"린?"




차에서 내리자마자 날카로운 말이 귀에 파고든다. 돌아본 그 곳에는 팔짱을 낀 마키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 안하고 어디 다녀온 거냐고 날카롭게 쏘아붙는 말이 차에서 내리는 코토리를 보자 더 심해졌다.



"코토리까지. 린!! 회사를 빼고 술 마시러 간 거야? 출근하고 오기로 했잖아! 너. 너 힘들다고 그렇게 피하는 게 어딨어! 바보 멍청아!!"



울컥,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복잡한 마음을 이해해주기보다는 회사를 빼고 술을 마셨다고 오해하고 린에게는 아무런 의견도, 변명도 묻지 않았다. 자기 중심적이다. 옛날 대학생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마키는 변한 것이 없는 고집쟁이였다. 보기 싫어.



"너는 내가 어땠는지 모르잖아!!"



린의 외침에 뚝. 그제야 잔소리가 멎는다.



"넌,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가 무엇때문에 괴로웠는지, 뭣 때문에 슬펐는지!"
"그런 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누구나? 울컥하는 마음 폭발하고 있었다. 취기가 올라오고 있는 건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 먼저 마키를 제지했다.


"회사에서 은따당하듯 숨만 쉬며 지내는 내 회사 생활이 누구나 겪는 얘기였어?
어디서 되먹도 못한 대리한테 성추행이나 당하는 게 누구나 겪는 거야?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게 매일 우는 삶이 누구나 겪는 거라고?"
"..."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나한테 소리부터 지르는데!!"


마키도, 코토리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린짱..."



분노한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다름아닌 하나요였다. 의외에 인물에 놀라는 건 린뿐이 아니었다. 


"가자."



누구도 린과 하나요를 붙잡지 않는다.








=====

미나링 님과 로웨일 님 덕분에 마음을 찾아서 축전(?)이랄까 표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실은 마지막에 마키가 아니라 코토리지만..! 그렇지만 저는 행복해요 꺄아악^0^

앞으로 완결까지 2편, 에필로그 한편까지 총 3편 남았습니다.

7-8편쯤에 완결짓기로 했는데 결국에는 처음 생각했던 10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12월 안에 완결짓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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