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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리]해피 버스데이

48일 달 2016. 6. 5. 13:34

이제는 가벼운 여름이불조차도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되어도 아직은 이불 안에서 앙탈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창문을 통해 아침부터 따갑게 내리는 햇살이 마냥 원망스럽다만은. 

부스스, 약속이 없는데도 오늘따라 눈이 반짝, 하고 떠졌다. 

무심히 본 핸드폰에는 니코의 문자가 와 있었다. 

[생일 축하해. 노조미.] 

누가 츤데레 아니랄까봐. 열두시 딱 되는 시간에 보내놓고 지금은 곤히 자고 있겠지. 고맙다고 꼭 안아주고는 싶지만 징그러운 성격이라 큼큼, 조그맣게 헛기침을 했다. 부끄러운 감정들이 헛기침 속에 숨는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왠지 혼자 고기 정도는 조금 많이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 나를 위해서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느끼며 턱을 괴고 오후의 햇살을 받고 싶은 날. 나를 위해서 나에기 선물하고 싶은 그런- 생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하지만. 별로 축하받지 못할 나이. 25. 

졸업을 하고 나서 1, 2년 정도는 호노카들이 와서 축하해 주곤 했지만 서로 바쁜 시기다 보니 이제는 연락도 드문드문했다. 가끔 서로 안부나 묻는 정도에. 생일은 까먹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리고 일에 치여사는 나에게 생일은 낯선 이가 되어버렸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치마와 살색 스타킹. 머리는 질끈 묶고 다시 한 번 거울을 쳐다봤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깔끔한 모습에 고개를 새침하게 돌렸다. 여느 날과 똑같이 출근하면 되긴 하지만 다시금 거울속에 보랏빛의 내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멍한 내 표정에 입술에 윤기가 돈다. 립스틱이라도 한 번 발라야지. 입술 안쪽에 발갛게 붉은 빛이 바깥으로 스며든다. 가끔, 한번쯤은 이렇게 치명적인 입술도 특별한 날에는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네게는 연락이 없다. 내 머릿속은 너로 유난인데. 새하얀 피부와 스피릿츄얼한 머릿결. 조바심을 내는 입술에 나를 부딪히고 싶어 입술을 잘근잘근 뜯었다. 너는 조바심이 날 정도로 연락이 없었고, 먼저 연락하기도 그랬다. 뭔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피릿츄얼한 네 기운은 오늘 내 마음을 알아주지는 않는가보다. 

"다녀올게." 

휑한 바람소리만이 내 귓가를 채운다. 이럴 수 없어. 특별한 날은 오늘이란 말이야! 라고 그녀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 수도 없이 외치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 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삐진 거 보여주면 또 어린애처럼 굴 거잖아. 그렇게 의연하게 넘어가는 건 싫다. 내 생일은 네가 먼저 챙겨줬어야지! 

더이상 생각하는 것조차 무섭다. 편의점에 들러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사고.. 

"담배 한 갑만 주세요." 

생전 처음 담배를 샀다. 네 목소리도, 네 얼굴도 보이지 않는 특별한 날은 더이상 나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니까. 회사 흡연실에서 담배를 뜯었다. 비닐 하나가 벗겨질수록 네 생각이 간절하게 난다. 

"매일 기댔던 네 어깨, 정말 예뻐." 
"외로워 할 틈도 주지 않을게." 
"좋아해. 노조미." 

내 어깨를 쓸어내리면서 하던 너의 말,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다 활짝 눈웃음을 짓는 너의 모습이 시리게 다가왔다. 나 외로워할 틈도 안 준다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에리치, 네가 미웠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려는데 라이터가 잘 안 켜진다. 처음 써 봐서 방법조차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멍청이같이. 몇 번이고 틱틱 소리를 냈지만 엄지손가락만 새까맣게 물이 든다. 나쁜 짓으로 네 생각에서 벗어나려 해도 도움이 안 된다. 물고 있던 담배를 가방 안으로 집어넣고 방으로 들어와 지갑을 챙기고 나왔다. 카페에 가서 생크림을 잔뜩 얹은 프라푸치노를 주문해서 마구 먹을거다. 단 게 싫은데 오늘은 정말로- 스트레스 받았어. 

"어- 코토리?" 
"노조미? 오랜만이야~" 

따뜻한 파스텔 톤 간판에 이끌려 들어온 가게에는 왠일인지 코토리가 웃고 있었다. 코토리- 안 본지 꽤 되었지. 폭 안자 그녀가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사람의 온기가 반갑다. 보고싶었어~ 말하며 그녀를 찬찬히 살폈다. 회색 머리는 변하지 않고 고운 찰랑거림을 자랑하고 있었고 옛날에는 풋풋함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아름답다, 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훨씬 성숙해 있었다. 

"뭐 하는 중이고? 여기 가게 차린기가?" 
"아니, 바이토. 친구 가게인데 잠깐 맡아서 봐 주고 있었어." 

요즘은 뭐하고? 시시껄렁한 이야기의 주제로 넘어갔다. 그녀는 옷에 대한 열의를 놓지 않았다. 디자인 학교를 졸업하고 와서 의상실을 차린다고 했다. 역시... 입에서 흘러나온 감탄사에 코토리가 얼굴을 붉힌다. 오래 서 있게 해서 미안한지 코토리가 황급히 말의 주제를 바꾼다. 앉아서 기다려 달라는 말에 볕좋은 창쪽 구석에 앉았다. 뭘 따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곧 간판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파스텔 빛깔의 잔에 아메리카노와 마카롱을 잔뜩 들고와 준다. 역시... 다시 그녀에게 웃어 보이자 에헤헤 미소짓는다. 

"오늘은 어쩐지 혼자 왔네?" 
"응?" 
"노조미는 항상 에리랑 다녔잖아. 에리와 있을 때 가장 즐거워 보여서 졸업하고 나서도 같이 붙어다니는 줄 알았거든." 

아아- 그녀의 말에 나는 그냥 싱긋 웃었다. 코토리의 표정이 미묘하다. 그러고 보니 혼자 카페에 와 본 것도 오랜만이다. 항상 카페에 올 때는 에리와 함께였다. 둘이서 시켜먹는 종류는 항상 달랐다. 그녀는 달달함이 잔뜩 들어간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하면 나는 항상 아메리카노였다. 서로 상극인 입맛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였지만 항상 아쉬운 감정은 들었다. 너도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 삼삼한 맛에 빠져버릴 텐데 하고 중얼거리면서. 마카롱을 한 입 베어물자 당장에 단맛이 입안을 감돌아 씁쓸함을 없애준다. 그래, 너는 이런 단맛을 좋아했지.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네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노래라도 틀어 준다면서 미묘한 표정의 코토리가 자리를 뜨고 나니 밝았던 분위기가 다시금 주저앉았다. 카드를 주르륵 펼쳤다. 어지럽게 섞은 카드들 중에서 한 장을 빼 놓았다. 아직 보지도, 보기도 싫었다. 만약에라도 나쁜 운세가 나온다면, 너를 상징하는 카드가 내 손안에 없다면. 나는 거기에서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카드의 운세도 믿기 싫어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는 오늘 결근이다, 결근. 집으로 돌아가도 결국은 음악조차 없는 한적함이라 더 외로울 것이라 집으로 들어가기도 싫었다. 여기도 흡연실이 있네. 아까 들고 나왔던 담배가 생각나 들어갔다. 서툴게 켜려고 했던 라이터가 이번엔 한번에 팡 하고 불이 반짝인다. 재빨리 담배를 갖다대고 후우욱, 숨을 들이켰다. 잿빛 연기가 폐 끝까지 들이찼다가 나간다. 몽글몽글한 연기가 아련하다. 결국, 스트레스는 네가 가장 증오하는 담배로 풀고 있었다. 처음 피우면 기침뿐이라던데 기침도 안 나온다. 정신이 대략 멍해진다. 이런 기분 때문에 피는가봐, 가느다란 두 손가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담배를 풀린 눈으로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에리치도, 뭣도 필요없어. 

"코토리, 나 갈게." 
"가는거야? 다음에 또 놀러와." 

바깥에 나오니 어둑함이 나를 감쌌다. 어째, 퇴근할 때보다 더 늦는 것 같은데. 게다가 퇴근 때보다 몸도, 마음도 더 지친다. 이제까지 연락 없는 네가 아쉬웠다. 이제 지울거야. 너 같은 거 필요없어, 에리치. 

터덜터덜 걸어온 집 바깥에서 볼 때 불은 모조리 꺼져 있었다. 당연히 불이 켜져 있을 리는 없다. 불을 다 끄고 나왔으니까.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보니 비밀번호도 네 생일인데. 1021. 내일 출근 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눌렀다. 눈물이 울컥하고 나올 것 같다. 겨우 잊었고 단단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눌러놓고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서 있었다. 

벌컥- 

"노조미 아...어.. 노조미." 
"...에리?" 

깜깜한 밤에도 블론드 빛 머리는 빛이 나는 것 같다. 붉은 장미꽃다발을 한 손에 쥐고 우리집 문을 연 사람은 오늘 내가 잊고자 그렇게 애를 썼던 너였다. 

"늦었어. 노조미." 
"에...에리... 니..." 
"생일 축하해." 

붉은 장미꽃다발이 발 밑으로 구르며 익숙한 온기가 나를 지배한다. 외로웠어. 외로웠어, 에리치. 그제야 꾹꾹 눌러담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정말 보고싶었단 말야. 소리내어 엉엉 울고 있자니 너의 따뜻한 손길이 내 등을 어루만진다. 생일 축하해-. 그 말 한마디보다 쉴새없이 밀려드는 온기가. 

그 온기가. 

내 생일선물이야. 에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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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뭔가 좀 내용이 어설픈데 이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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