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일하기 싫다." "맞아맞아. 오늘같은 날 그냥 집에서 맥주 한캔하고 TV나 보면 딱인데 그치." "차라리 학생이면 좋을텐데. 이렇게 일도 안하고." "그런가. 난 아예 유치원생이였으면 좋겠다니까~. 야자와 씨는 어때?" 네? 점심시간. 여러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피곤한 눈을 부릅뜨며 하얀 쌀밥과 야키니꾸를 우걱우걱 공략하고 있었는데. 평범하게 일하기 싫은 이야기에 왜 날 끌어들이는 건지 모르겠다. 여자들의 오지랖은 넓다. 그러게요, 저도 학생으로 돌아고 싶어요. 대충 둘러대고 다시 젓가락질을 하려고 했지만 난데없이 귀에 꽂히는 기억-이 파편처럼 마음을 스친다. 내 기억은 현실을 춤추듯 떠나 어느 한 곳에 머무르고 떠밀리듯 기억 속에 정착했다. 현실은 아무리 고개를 도리도리해도 나타나..
"방학이다~ 그치?" "그렇구만. 방학 때 닌 뭐 할낀데?" "으- 아직은 무계획. 토죠는?" "난, 러시아." 어리둥절한 옆의 여자에게 가벼운 미소를 입꼬리에 걸었다. 러시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잊혀질래도 잊혀지지 않는 너. 너 때문에 나는 러시아가 굉장히 낯설지만 낯익은 곳이였다. "음- 러시아라면 금발의 예쁜 언니들이 많은 곳인가? 저 언니처럼." 같이 얘기하던 옆의 여자는 길게 손을 뻗었다. 시원시원한 손가락이 가르키는 곳. 긴 금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얼굴을 거의 가리다시피 한 까만 선글라스보다 그 아래 들어오는 붉고 작은 입술이였다. 도톰하고 붉은 입슬은 푸른 빛깔의 빨대를 앙- 하고 물고 있었다. 가슴이 약간 끼는 듯한 채도가 낮은 청록색의 블라우스. 그리고 하얀색 ..
이제는 가벼운 여름이불조차도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되어도 아직은 이불 안에서 앙탈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창문을 통해 아침부터 따갑게 내리는 햇살이 마냥 원망스럽다만은. 부스스, 약속이 없는데도 오늘따라 눈이 반짝, 하고 떠졌다. 무심히 본 핸드폰에는 니코의 문자가 와 있었다. [생일 축하해. 노조미.] 누가 츤데레 아니랄까봐. 열두시 딱 되는 시간에 보내놓고 지금은 곤히 자고 있겠지. 고맙다고 꼭 안아주고는 싶지만 징그러운 성격이라 큼큼, 조그맣게 헛기침을 했다. 부끄러운 감정들이 헛기침 속에 숨는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왠지 혼자 고기 정도는 조금 많이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 나를 위해서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느끼며 턱을 괴고 오후의 햇살을 받고 싶은 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