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말이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재떨이 대신 하얀 종이컵 위에 재를 놓는 그녀의 손가락이 하얗다. "재미없어." 그 얇은 담배도 하얗고 그녀의 입술 끝에서 나오는 한숨같은 담배연기도 하얗다. 오래간만에 본 에리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자신과 똑같이 풀어헤친 탄탄한 머릿결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미." "네." "안아주지 않을래, 나?" 얼굴이 빨개진 나는 더듬거리면서 강하게 부정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나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부정하고 부정했지만 그녀는 다가온다. 어깨 위 걸쳐진 하늘색의 가디건을 바닥으로 흘려 보낸다. 아이보리 색 나시티를 입은 그녀는 요염했다. "그럴, 그럴 수, 수, 없어요..에, 에리." "우-미는 이런 데 젬병이니..
붙었다 떨어지는 그녀의 입술을 조용히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커피잔을 달그락거리는 모습에 감히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나는 불안하게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입으로 가져간 커피는 어느새 차가워져 쓴 맛만을 안아주고 있었다. "그만하자." 나는 그 말을 곱씹어 소화하고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녀가 지루해 할 정도로. "..." "그동안 고마웠어." 그녀가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카페를 나갈 때까지 나는 가만히 있었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창문 안쪽으로 내리쬐는 늦겨울의 햇볕은 따스했고, 나는 커피와 함께 나른해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거." 또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온 그녀가 나에게 전해준 것은 금색의 링.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다. 꿈에서 억지로 ..
"어.. 지금." "떨어졌다고." 니코는 그랬다. 백번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음 기회는 또 있다고, 그 시험은 어려운 시험이라서 너도 한 번에 붙는 건 어렵다고. 그녀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에서는 백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나 있는 거 같았다. 그녀는 아무 이야기도 하기 싫은 듯 방 안으로 들어갔고 니코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만들던 나베 요리가 있었다. 그녀에게 먹여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서둘러 파를 썰었다. "나와 봐." "..." "나와보라구" "싫어." 겨우 들릴까말까한 목소리에 나는 방문 앞에서 떨어졌다. 열쇠가 어딨더라... 2분 뒤 거실의 악세사리 상자 안에서 발견한 절그럭거리는 열쇠를 가지고 방문 앞에 다시 섰다. 나는 무서웠다. 문이 열리고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