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노조미를 좋아하는 거 같아."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 건 비단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든 제가 더 죄인이지. 그냥 좋은 언니와 동생으로도 남을 수 있었는데. 이 상황을 만든건 제 자신이었다. "에리에겐..최선이었겠죠..." "우미야말로, 괜찮아?" "괜찮지는 않지만... 노력해야죠." 같이 걷는 두 그림자가 길게 어그러졌다. 작은 자갈들이 밟히는 둔탁한 학생구두의 소음과 딱딱 부서지는 하이힐의 소리는 어긋나게 조화하고 있었다. "좋아했어요." 단단하지만 따뜻한 그 목소리에 에리는 설핏 걸음을 멈췄다. 두고두고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렇게 쓸쓸한 상태가 아니라 초콜릿처럼 달달한 분위기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기다리고 있는 간질간질한 상태로 고백하고 싶었다. 고개를..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아마 생각할 수 없는 당신의 표정 아래에는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어요.저는 당신을 참 좋아했어요. 당신이 처음 말을 걸어주었던 그 순간부터, 어쩌면 그 때부터.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어요.당신은 내가 끌려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순간 저는 마법에 걸린 듯 환상에 빠졌습니다. 에- 하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었던 건 진심이 아니였어요. 너무 놀라서, 너무 놀라서. 당신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저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적이여서 조금 낮은 목소리를 내어버렸어요.그 짧은 순간이 날카로운 단도처럼 당신의 기억에 핏자국을 내 버린것만 같아 항상 죄책감에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겁났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올곧게 나만 봐 주었어요. ..
"맥주랑- 맥주랑.." 나는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 안에 맥주만 집어넣고 있었다. 자꾸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감출 길이 없었다. 한적한 마트 안에 카운터 직원이 자신을 향해 눈길을 자꾸 주고 있었지만 그걸 신경쓸 여유는 전혀 없었다. 맥주 캔을 다섯 개쯤 들고 나니 손에 들리는 묵직함에 억지로 현실로 끌려왔다. 내 머릿속은 그 생각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과포화였다. 알파카 탈, 점 보던 그 장면, 너의 아름다운 모습과 눈빛부터 내가 너에게 소리질렀던 상황, 캄캄히 몰려오는 외로움. 그리고 5년 전 기억들까지. 순서없이 몰려드는 기억들은 죄스러웠고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미안...해." 얼핏 중얼거렸다. 네가 들을 리 만무하겠지만. 집까지 걸어가기도 힘이 없었다. 축 늘어진 비닐봉지에서 덜렁..